병원에서 들은 설명은 왜 집에 오면 전부 잊어버릴까?
병원에서는 분명 고개를 끄덕였다.
의사 선생님 말도 이해한 것 같았고, 검사 결과도 “아, 그렇구나” 하며 들었다.
그런데 집에 도착해 신발을 벗는 순간,
머릿속이 이상할 정도로 비어 있다.
“아까 뭐라고 하셨지?”
“그 수치가 괜찮다는 거였나, 조심하라는 거였나?”
“다음에 꼭 물어보라고 했던 게 있었는데…”
이건 기억력이 나빠서 생기는 일이 아니다.
그리고 당신만 겪는 일도 아니다.
병원에서는 ‘이해한 것처럼 느꼈을’ 뿐이다
진료실 안에서는 대부분 비슷한 상태가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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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간은 짧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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설명은 빠르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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용어는 낯설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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질문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
설명을 듣는 동안 우리는 사실
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, 따라가고 있을 뿐이다.
모르는 부분이 생겨도
“이 정도는 다들 아는 건가?”
“괜히 귀찮게 하는 건 아닐까?”
이런 생각이 먼저 든다.
그래서 진료실을 나설 때는
‘이해했다’는 느낌만 남는다.
보호자는 더 복잡한 상황에 놓인다
보호자의 입장은 한 단계 더 어렵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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환자를 대신해 설명을 들어야 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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감정적으로 흔들리는 상태이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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잘못 전달하면 안 된다는 부담이 있다
설명을 듣는 순간부터 머릿속은 이미 이렇게 움직인다.
“이걸 집에 가서 어떻게 설명하지?”
“이 부분은 중요한 것 같은데…”
“내가 잘못 이해한 건 아닐까?”
정보를 이해하기도 전에
이미 전달자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.
병원 설명은 잊어버리기 쉬운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
솔직히 말하면, 병원 설명은
기억에 남기기 가장 어려운 환경에서 이루어진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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긴장된 상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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낯선 의학 용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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숫자와 검사 수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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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간에 쫓기는 분위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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질문하기 어려운 공기
이 상태에서 들은 설명이
집에 와서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는 건
어쩌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.
“그때 물어봤어야 했는데…”
집에 오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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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아, 그때 이걸 물어볼걸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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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이 약은 왜 먹는 거였지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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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다음 진료까지 그냥 기다리면 되는 건가?”
하지만 이미 진료는 끝났고,
다시 병원에 전화하기도 애매하다.
결국 검색창을 열게 된다.
검색을 하면 할수록 불안해진다
검색은 정보를 주지만,
내 상황에 맞는 설명은 주지 않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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같은 병명인데 다른 이야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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같은 수치인데 다른 해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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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로 반대되는 조언들
“이 글은 나한테 해당되는 말일까?”
“나는 지금 어느 단계인 거지?”
검색을 하면 할수록
불안은 줄지 않고 오히려 커진다.
그래서 다음 진료도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
다음 진료일이 오면
또 비슷한 흐름이 반복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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검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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설명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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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개 끄덕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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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리고 다시 공백
질문은 머릿속에 있었는데,
막상 진료실에 들어가면 떠오르지 않는다.
“다음에 물어봐야지”라는 생각만 남는다.
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
이 상황을 겪는 많은 사람들은
스스로를 탓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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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내가 멍청해서 그런가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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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내가 기억을 못 해서 그렇지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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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내가 정리를 안 해서…”
하지만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.
설명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구조의 문제다.
설명은 사라지고, 불안만 남는다
병원 설명은
그 순간에는 있었지만
집에 오면 남아 있지 않다.
대신 남는 건 이런 감정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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애매한 불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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찜찜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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놓친 것 같다는 느낌
그리고 이 감정은
다음 진료 때까지 계속 이어진다.
이 글을 읽으며
“이거 내 이야기 같은데”라는 생각이 들었다면,
당신의 기억력이 문제가 아니라
많은 사람들이 공통으로 겪는 경험일 뿐이다.
다음 글에서는
이 ‘사라지는 설명’이
왜 반복될 수밖에 없는지,
사람들이 가장 혼란을 느끼는 지점이 어디인지
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려 한다.